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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완전한 추상에 도달한 피트 몬드리안 알아보기

by 냠냠똥과자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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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몬드리안은 20세기 초 모더니즘을 끌어나가며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거장이었습니다.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암스푸드에서 태어났습니다. 1872년에 태어나 1944년에 생을 마감합니다. 처음에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거쳐 야주주의를 흡수하게 됩니다. 마흔 이후 방문한 파리에서 입체주의 그림을 접한 후 해로운 조형의 가능성에 눈뜨고 급격한 양식의 변화를 보입니다. 이 과정은 '나무' 연작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단순화 과정을 거쳐 기하학적인 조형에 도달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혼란기 중에 직선을 사용하기로 마음을 먹게 됩니다.

 

오해와 진실

몬드리안의 그림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어린이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몬드리안은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화가들처럼 사물과 인물을 완벽하게 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테크닉 면에서 정말 쉬워 보이는 그림입니다. 처음부터 직선과 삼원색의 그림을 그렸다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겠지만 그리기 쉬워 보이는 이미지 뒤에 감춰진 그의 연구와 시간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수년간 작업을 거쳐 그림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몬드리안의 작품을 보면 자를 대고 그렸을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과연 그랬을까요? 오늘날 미술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에겐 놀라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랬다고 합니다. 완벽한 구성을 계산하기 위해 투명한 리본 테이프로 길이를 재기도 했습니다. 계산을 끝낸 다음 목탄으로 데생을 하고 색을 칠한 것입니다.

 

선과 색

몬드리안은 "순수한 사실성을 조형적으로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형태를 그 형태의 불변하는 기본 요소로 자연의 진실성은 형태와 색채의 역동적인 움직임의 균형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다. 순수성은 이를 획득할 때 가장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시대의 미의식과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정립하는 합의점을 선과 색의 순수한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몬드리안은 선과 색 사이의 대화, 역학 혹은 조화의 관계를 설정해 놓았습니다. 붉은색 사각형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검은 선들 중에서도 두껍고 무거워 보이는 검은 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보통의 검은 선과 다른 두꺼운 검은선이 붉고 무거워 보이는 사각형을 잡아주는 듯합니다. 비대칭 적인 것 속에서 균형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림으로 실현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몬드리안 그림에서 보이는 사각형들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계산에 의한 배치의 결과물입니다. 몬드리안은 왜 수직 수평의 직선에 매료되었는지는 그가 태어난 고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의 고국 네덜란드는 평평한 평지에 지어져 있는 교회와 풍차 그리고 등대는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수직 수평이 보입니다. 그가 살면서 바라본 광경이 그의 그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논리적 사고방식과 실험정신이 그로 하여금 직선에 매료되게 만들었습니다.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철저하게 연구함으로써 유명한 입체파의 화가보다 더욱 순수한 추상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수직 수평의 직선과 삼원색 그리고 흰색 검정이 기본이 되어 조화로운 구성을 평생을 연구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의 내용으로 왜 색은 세 가지만 썼는지는 쉽게 답이 나옵니다. 붉은색, 푸른색, 노란색은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색입니다. 붉은색에 노란색을 섞으면 오렌지색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색을 섞어 다채로운 컬러를 만들 수 있지만 이 세 가지 기본색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순수한 사실성을 조형적으로 창조하기 위해선 이 삼원색만으로 표현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완전한 추상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엄격하고 냉정했던 그는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튤립 조화를 항상 가까이에 두었는데 녹색 잎이 신경 쓰여 흰색 물감으로 칠 했다고 합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만년엔 그린 그림입니다. 너무나 금욕적이고 이지적이어서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한계를 가지고 있었던 그의 작품이 만년에 그러한 틀을 유연하게 뛰어넘는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몬드리안이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뉴욕으로 여행을 갔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는 일흔에 그린 작품입니다. 뉴욕은 세계의 어느 도시보다 직각으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직각으로 교차하는 선들의 망으로 이루어진 뉴욕을 본 몬드리안은 몹시 흥분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세계관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곳과의 만남은 네덜란드의 시골 마을에서 파리에 처음 갔을 때의 충격보다 더 컸을 거라 생각됩니다. 자를 대고 그린 듯 직각으로 교차하는 도로들, 화려한 조명과 네온사인 그리고 고층 빌딩에 불이 켜진 창과 안 켜진 창들의 추상적 무늬들을 본 몬드리안은 " 나의 작은 색 면들과 흑백으로 된 작품은 유화로 따지면 데생에 불과했을 뿐임을 지금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친구에서 편지로 써 보냈다고 합니다.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에 보이는 기존과는 다른 색채를 통해 몬드리안의 충격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도시 뉴욕에서 그의 생은 마감합니다.

 

마지막으로 몬드리안을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몬드리안은 우리 현대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는 우리의 생활에 몬드리안의 수직 수평의 직선은 너무 익숙합니다. 기계적으로 만들어내는 직각의 제품, 효용성만을 추구하는 사각형의 틀 속에서 몬드리안의 엄격함 속에 들어 있는 평온함은 단순히 기능의 면을 벗어나 예술적 요소를 더함의 필요성을 놓치지 않게 해 줍니다. 이는 몬드리안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제품이 보다 더 잘 팔리는 것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함을 추구하는 작품 극에 달하는 절제를 보여준 작품 어느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없지만 그의 연구를 통해 나온 결과물들은 오늘날 우리 현대에 잘 스며듦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몬드리안의 작품이 그 당시에는 잘 팔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이 단순한 그림에 유혹을 느끼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본인의 작품에 만족감을 느끼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가구 디자인, 잡지 스타일, 실내인테리어, 광고 패션에 이르기까지 몬드리안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는 지금  몬드리안이 현실에 굴하지 않음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