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한국 미술의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김중현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김중현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과 삶의 이야기는 미술사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김중현의 삶은 그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특별합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여러 직업을 가진 뒤 화가의 길을 걸었고, 부인의 헌신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습니다. 또한, 술잔 실력으로도 유명했던 그는 한 번의 주량 대결에서 승부욕을 드러냈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 모두에 능했던 그의 삶을 살펴보고 작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중현의 작품 "춘양"
김중현이 1936년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받은 작품인 "춘양"은 그림 속에 한국의 전통적인 가정생활을 병풍 형식으로 아름답게 담아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내어 근대화 과정에서의 가정생활의 변화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 속에는 대청마루의 한옥 구조와 그 위에 놓인 병풍, 도자기, 뒤주 등의 한국 전통문화와 가정생활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상의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음식을 준비하거나 아이를 돌보는 등의 다양한 일상 활동을 하며 활기찬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은 일본식 화법과 서구적인 화법을 조합하여 구성되었으며, 작품 전체에는 명암법과 원근법을 사용하여 시각적인 사실성을 높였습니다. 특히, 작품 속 한복의 선명한 색채 대비와 조화는 김중현의 서양화 공부를 통해 발전된 기법을 보여주며, 이는 작품에 생동감과 아름다움을 부여합니다.
김중현의 삶과 예술
김중현은 서양화와 동양화 부문에서 동시에 특선을 받으며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1919년 경성성애학교를 졸업한 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으로의 유학은 어려운 경제적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이어갔습니다. 김중현은 여러 직업을 가지면서도 화가로서의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 후 돌아온 친구들과 그림을 그리면서 실력을 키웠으며, 조선미술전람회에 매년 출품하여 수상을 이어가며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1925년부터 1938년까지 김중현은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며 서양화계에서 그의 위치를 굳혔습니다. 초기에는 소박한 자연 풍경과 인물상, 정물 등을 주로 그렸으나 1930년대에는 서민층의 삶과 풍속적인 정경을 토속적인 기법으로 표현하여 독창성을 드러내었습니다. 특히 1936년부터는 동양화와 서양화 부문에서 모두 특선을 받으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미술계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광복 직후에는 조선상업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는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사직동에서 활동하며, 서울의 대동상업학교와 대신상업학교에서 미술교사로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김중현은 뛰어난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술에 대한 승부욕도 높았던 인물로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중현은 미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술잔 실력에서도 탁월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번은 일본인과의 주량 대결에서 승부욕과 뛰어난 주량을 뽐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술집에서 그의 주량에 대한 소문을 듣고 나선 일본인이 화이트호스 위스키 한 병을 가져와 도전했습니다. 김중현은 자신의 주량에 대한 자신감으로 도전을 수락했고, 한 번에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에는 힘들었지만 승리의 욕심으로 견뎌내며 마시고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의 주량과 승부욕은 그의 예술가로서의 업적과 함께 그의 인생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는 그가 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면에서 독특하고 특별한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작품뒤에 숨은 김중헌 부인의 내조
김중현의 작품 활동은 부인의 내조 덕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결혼 후 김중현의 부인은 그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며 집안 살림을 잘 꾸려나갔습니다. 이전까지 김중현의 살림은 형편이 없었지만, 부인은 불평 없이 살림을 잘 다스렸습니다. 김중현이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살림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었던 것도 부인의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부인은 김중현이 집안 살림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신이 챙겨 나갔습니다. 또한, 김중현이 작품 제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밥을 차려 놓고도 직접 가져다주어야 먹는 정도까지 이끌었습니다. 이는 현대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지만, 그만큼 김중현과 부인 사이의 긴밀한 유대와 헌신이 묻어있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대구 피난 시절에는 부인이 병을 얻자 김중현은 부인을 돌보며, 병시중을 챙기고 미음을 끓여주며 서로를 보살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 부부의 사랑과 헌신은 그야말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전해지며, 김중현의 작품 활동과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무리하며 김중현의 작품과 삶은 한국 미술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춘양"을 비롯한 그의 작품은 한국의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며, 그의 삶은 끊임없는 열망과 헌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한국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시각과 기법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전달합니다. 또한, 김중현과 부인의 사랑과 헌신은 그의 작품 활동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인의 내조는 그가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그의 작품을 빛내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이처럼 김중현의 작품과 삶은 서로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한국 미술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쓰고 있습니다.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혜석 : 열정으로 여정을 빛낸 여성 화가 (0) | 2024.03.27 |
---|---|
동양화가 이여성과 서양화가 이쾌대 이야기 (1) | 2024.03.26 |
국내 미술사의 중요한 산실, 하인두의 작품과 역사적 의미 (0) | 2024.03.22 |
일제 식민지 미술교육: 야마다 신이치와 사토 구오 (0) | 2024.03.21 |
입체파의 선구자 피카소 (0) | 2024.03.20 |